북구소식

북구 두암2동 이따냐 씨

북구신수정 2009. 9. 14. 16:57

주부 명예기자가 뛴다!


기획시리즈/ 다문화가정 여성의 꿈과 삶

⑤ 북구 두암2동 이따냐 씨


야무진 고려인 3세, 사업가 꿈 키워


경제학 전공 살려 남편 사업 뒷바라지

첨단병원, 화순전대병원서 통역봉사도


 

 “우리 마누라 오늘도 통역한다고 갔대요.”

이따냐(31) 씨의 남편은 마누라가 예뻐서 아는 사람만 지나가면 자랑하느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옛말에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 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자랑해도 남편은 시간이 부족하다. 오늘도 이따냐 씨는 첨단병원에 통역봉사를 하러 갔나보다.

이따냐 씨는 8년 전 러시아 쪽 키르키즈스탄에서 시집 온 고려인 3세이다. 증조부가 한국이 고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한국말을 가끔씩 들어본 적이 있었다.

“고려인 3세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었고, 그곳에서 고려인에게는 더 이상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한국으로 시집오게 되었어요.”

키르키즈스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일자리를 찾던 중 고려인이라는 것 때문에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한국 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이따냐 씨. 남편과 인연은 정말 천생연분이다.

“맞선 자리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어디서 꼭 본 듯한 기분이었어요.”

친정 아버지와 어쩌면 그렇게 꼭 닮았는지, 남편과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아무도 없는 이곳에 남편 말고는 믿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이따냐 씨의 말에 잘 따라주었고 조그마한 전기용품 가게도 하나 있어 그곳에서 함께 배우고 익히며 남편은 현장일을 하고 이따냐 씨는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손님이 한국말이 서툰 여자가 가게를 본다고 물건 값을 맘대로 정해서 가져 갈려고 했어요. 안된다고 했는데 물건을 가지고 나가려는 남자 손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물건을 빼앗고 안 판다고 가라고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었어요.”

야무진 이따냐 씨는 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손님을 혼내준 것이다.

이제 한국 국적도 취득했다. 떳떳하게 한국인으로 살아 가려고 한다.

지금은 화순 전대병원에서 통역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주위 사람들에게 통역요청도 가끔씩 들어온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 가면서 하고 싶었던 직업을 찾아 발을 옮기려고 한다. 경제학을 전공했기에 남편의 사업을 뒷받침하며 큰 사업가의 꿈을 실현 시키고 싶은 것이 이따냐 씨의 희망사항이다. 고옥란(주부명예기자)